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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원평론

국수당(國首堂)의 연개소문(淵蓋蘇文)

현도학회 2009.05.13 13:55 조회 수 : 2028


강화도에는 국수당(國首堂)이라는 산봉우리가 있다. 오련산(五蓮山:고려산)의 지맥(支脈)이 북쪽으로 흘러내려가다 다시 힘차게 역(逆)으로 솟은 봉우리로, 그 주변의 마을에서는 각기 다른 명칭으로 부른다. 사직골이라는 마을에서는 이곳을 시루봉으로 부르고 쇠죽량 마을[삼거리]에서는 국수당(國首堂)이라고 부른다.



[연개소문이 살았던 것으로 전해지는 집터의 흔적]


[연개소문이 살았던 것으로 전해지는 집터의 흔적]


[연개소문이 살았던 것으로 전해지는 집터의 흔적]


[연개소문이 살았던 것으로 전해지는 집터 앞의 축대의 흔적]


[연개소문이 살았던 것으로 전해지는 집터 앞의 축대의 흔적]


[집터 앞의 우물이 있던 곳의 흔적]



이유를 들어보면 사직골이라는 마을에서는 그 산봉우리를 보면 마치 떡시루처럼 생겼다고 하여 시루봉이라고 부르고, 쇠죽량 마을[삼거리]에서는 언제부터 그곳을 국수당(國首堂)이라고 불러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연개소문(淵蓋蘇文)을 기리기 위해 국수당(國首堂)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 마을에 전해지는 전설에 의하면 그 산에서 연개소문(淵蓋蘇文)이 태어났으며, 그곳에서 성장하면서 무예(武藝)를 익히고 연마(鍊磨)하여 고구려의 국수(國首) 즉 우두머리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집터 앞산의 모습]


[집터 앞산의 모습]


실제로 국수당(國首堂)의 주변에는 아직까지도 연개소문(淵蓋蘇文)이 태어나서 살았다고 전해지는 집터와 우물이 있던 곳으로 여겨지는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연개소문(淵蓋蘇文)이 강화도에서 태어난 것은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연개소문(淵蓋蘇文)은 고구려의 귀족(貴族)이자 막리지(莫離支)인 연태조(淵太祚)의 아들로, 태어날 때부터 역성(易姓)의 기운(氣運)을 타고난 인물이라고 하여 다른 귀족들의 경계와 음모로 인해 고구려에서 정상적으로 키울 수 없었다. 그래서 개소문이 3세가량 되었을 때 고구려와 백제의 경계지역에 위치하여 양국(兩國)의 세력이 쉽게 미치기 어려운 갑비고차(甲比古次島)도 즉 지금의 강화도(江華島)로 피신시켜 무사히 성장하도록 한 것이다.


지금은 국수당(國首堂) 앞의 별립산과 봉천산, 오련산[고려산] 사이의 해안을 매립하여 농지(農地)로 조성되어 있지만, 그 전까지만 해도 국수당(國首堂) 앞의 해안은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이 바닷물과 만나 자연적으로 늪지대가 형성되어 물고기들의 산란하기에 적합하여 해산물이 넘쳐나던 곳이었다. 또한 지형적으로도 국수당(國首堂)을 등지고 보면 사방이 산으로 막혀있어 은신(隱身)하며 생활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다.


이러한 곳에 연개소문(淵蓋蘇文)이 3세 가량 되었을 때 유모(乳母) 부부와 문사(文師), 무사(武師) 등 다섯 명이 연개소문(淵蓋蘇文)을 데리고 배를 타고 들어와 국수당(國首堂) 중턱에 은거(隱居)하면서 막리지(莫離支)의 재목(材木)이 되기 위해 필요한 학문(學文)과 무예(武藝), 수행(修行) 등을 지도하고 가르치며 길렀다. 이때 연개소문(淵蓋蘇文)이 수행하던 곳이 국수당(國首堂)의 정상(頂上)이다.


국수당(國首堂)의 정상에는 연개소문이 수행을 하면서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고 대망(大望)을 가슴에 품었던 바위가 천년이 넘는 세월을 버티며 남아있다. 이곳에서 개소문의 키가 대략 183cm가량의 청년으로 자랄 때까지 학문과 무예, 수행 등을 갈고 닦았으며, 23세가 되었을 때 국수당(國首堂)에서의 공부를 마치고 세상에 대한 견문을 넓히고자 갑비고차도(甲比古次島)를 떠나 경기도와 충청도 일대를 돌아본 후 배를 타고 산동반도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수당의 교체기를 겪고 당나라의 전반적인 정황을 파악한 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결심하고 고구려로 귀국했다.



[연개소문이 수행하던 곳의 바위]


[국수당에서 바라본 전경]


지리학적으로 연개소문이 청년기까지 성장하며 학문과 무예를 닦고 수행을 하던 국수당을 보면 고구려에서 대막리지가 되기까지의 행적과 일치하는 면을 볼 수 있다. 국수당은 오련산[고려산]에서 흘러내려가다 거꾸로 우뚝 솟은 봉우리로 역성(易姓)을 상징하는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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