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주산(主山)이 멋지다고 하여 그 앞을 명당(明堂)으로 착각하는 이들이 있기에 이 부분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먼저 짚고 넘어갈 것은 음택(陰宅)의 명당과 양택(陽宅)의 명당은 분명히 다르다는 것이다. 음택의 명당이 양택에서도 명당인 것으로 착각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 그 구분이 명확하지 못했기 때문에 조선의 궁궐터를 정하는데 있어서 인왕산(仁王山)을 주산으로 하느냐 북악산(北岳山)을 주산으로 하느냐의 문제가 생겼던 것이고, 근세에 와서도 청와대의 부지를 잡는데 있어서 현재의 청와대 자리를 천하명당이라고 선택한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주산이 집의 뒤에 멋지게 있으면 좋은 집터이고 그렇지 못하면 아니다?’ 이러한 설명은 풍수지리에 있어서 양택과 음택의 기본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설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양택이든 음택이든 터를 중심으로 하여 주변에 문필봉(文筆峯)이나 장군봉(將軍峯), 노적봉(露積峯) 등 힘차고 멋지게 솟아있는 산이 있으면 아주 좋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양택에 있어서는 양택의 터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느냐가 우선이지 주산이 얼마나 멋진가의 여부가 중심이 될 수는 없다. 앞에서 집을 바라보기에 뒤에 멋진 산이 중심에 맞추어 딱 버티고 있으면 멋있기는 하다. 그러나 주산이 멋지다고 그곳이 반드시 집터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참조그림1]
주산이 힘차고 멋지게 갖추어져 있어야 양택으로서의 부지가 된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모일간지에 자료로 제시한 네 곳의 사진을 분석해 보도록 하겠다. 우선 참조그림1을 클릭하면 나오는 [사진 1번]을 보면 양택을 설명함에 있어 음택을 예로 제시한 것은 분명 문제가 있는 부분이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음택의 명당과 양택의 명당은 분명히 구분 지어지며, 주산이 양택부지의 가부를 좌우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사진 1번]은 양택을 설명하는 이 부분에서는 설명할 필요가 전혀 없다. 음택의 명당을 양택으로서도 명당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면 이런 이들이야 말로 한 집안을 풍비박산 낸다는 반풍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 [사진 2번]을 보면 학교 뒤로 산이 멋지게 자리하고 있다. 현재의 청와대의 모습과 앞에서 보이는 모습이 유사하다. 아마도 청와대가 명당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이 사진을 참고자료로 올린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학교의 뒤로 주산이 멋지게 보인다고 좋은 명당에 자리 잡았다고는 절대로 단정할 수 없다. 우선 뒤에 산이 학교를 충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사진상으로는 알 수가 없으며, 지형적으로도 양택으로서 명당의 구성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다음 [사진 4번]도 [사진 2번]과 마찬가지로 법당의 뒤로 건물 중앙에 봉우리가 자리 잡아 보기는 좋지만 양택의 부지로서 명당인지는 사진상으로는 알 수가 없다. 마지막 [사진 3번]은 [사진 2번], [사진 4번]과는 전혀 다른 예이다. 전형적인 양택명당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뒷산이 좋아서는 당연히 아니다. 부지자체가 양택명당으로서 구성을 제대로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뒤에 산이 집을 잘 받쳐주고 온화하게 감싸주는 모습은 있지만 충하는 모습은 전혀 없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양택명당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자리 자체가 지형적으로는 명당의 형국은 제대로 갖추고 있지만 주변의 산이 충하는지 그리고 이 자리에 맞게 앞에 물의 흐름이 어떠한지 또한 보아야 정확하게 명당인지의 여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참고적으로 혹자는 형상을 중심으로 명당에 대해 이야기 하니 형기론(形氣論)에 중심을 둔 명당론(明堂論)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명당의 첫째 조건은 자연적으로 구성이 되어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기론(理氣論)이든 형기론(形氣論)이든 명당을 찾는 방법이 다를 수는 있어도 찾은 명당이 다를 수는 없다.
산을 올라가는데 지도와 나침반을 참고삼아 올라가는 사람과 산만을 바라보고 올라가는 사람이 똑같이 정상에 도착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할 것이다. 이기론과 형기론이 명당을 찾고 설명하는 방법이 다소 차이가 있을 수는 있어도, 찾은 명당이 다르고 좌향(坐向)이 다르다면 문제가 있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이기론이라고 해도 형상을 갖추지 못한 곳에서 이기론의 이론만으로 명당을 지정한다면 그것은 실질적인 명당이 아닌 이론적인 명당에 불과할 뿐이다. 이기론이든 형기론이든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문제이지만 첫째는 형상적으로 명당의 형국을 갖추어야 하며 지리적으로 존재하는 명당이 다를 수는 없다.
[무학대사의 인왕산 경복궁과 정도전의 북악산 경복궁의 비교]
사진에 대해서는 이정도로 하고 이 설명을 중심으로 하여 인왕산을 주산으로 하여 경복궁을 짓자는 무학대사의 주장과 북악산을 주산으로 하여 경복궁을 짓자는 정도전의 주장을 비교해 보겠다. 우선 북악산을 주산으로 하는 현재의 경복궁의 위치에 대해 설명을 해보겠다. 경복궁은 정도전의 주장에 따라 그 위치와 좌향이 정해져서 지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경복궁의 위치가 양택으로서 적당한 위치가 될 수 있는가 살펴보자.
우선 경복궁을 중심으로 하여 뒤로 사진 2번과 같이 북악산이 멋지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위에서 설명했지만 뒤에 산이 멋있다고 해서 명당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 다음으로 경복궁의 뒤로 가서 북악산이 경복궁을 충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주변이 형국이 아무리 잘 갖추어져 있다고 해도 충하는 자리는 절대로 양택으로서 명당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래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북악산은 사진 3번과 같이 경복궁을 뒤에서 받쳐주고 감싸는 모습이 아니라 옆으로 삐딱하게 경복궁을 치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한 마디로 충하는 형상이다. 여기까지 만으로도 이미 경복궁은 양택부지로서의 명당이 될 수가 없다.
[북악산 앞으로 보이는 청와대와 경복궁-감싸주지 못하고 옆으로 삐딱하게 치고 있는 모습]
[청와대 전경]
그리고 그 다음으로 경복궁을 중심으로 하여 청룡백호에 해당하는 낙산과 인왕산을 비교해 보면, 여자에 해당하는 백호인 인왕산은 매우 억센 반면에 남자에 해당하는 청룡인 낙산은 나지막하게 유유히 흘러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형상으로 인해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에 있어서 여자들의 기세가 강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북악산이 경복궁을 온화하게 감싸주는 것이 아니라 충하고 있고 청룡인 낙산이 미약함으로 인해 조선의 왕들은 대부분 강력한 왕권을 발휘하지 못하고 신하들에게 휘둘리며 신하중심의 신권정치로 나아가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즉 경복궁이 위치한 풍수지리적인 형상대로 조선의 역사에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난 것이다.
[빨간 원이 보현봉이다-경복궁 앞에서 보면 보일듯 말듯하게 보인다]
또한 무학대사가 경복궁의 위치가 정도전의 뜻대로 정해지자 “200년 뒤에 내 말이 생각날 것이다.” 라고 한 것은 경복궁의 뒤로 보현봉이 규봉(窺峰)으로 작용하기 때문이었다. 풍수지리에서 규봉은 도둑봉우리라고 하여 매우 흉하게 여기는 부분으로, 이것이 있으면 집안에 도둑이 들거나 재물을 잃기도 한다고 본다. 이로 인해 무학대사의 말대로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의 왜침에 시달려야 했으며 조선의 마지막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것으로 끝을 맺게 된 것이다. 역사가 이처럼 경복궁의 풍수지리적인 형상대로 그대로 반영해 주고 있음에도 뒤에 위치한 북악산이 힘차고 멋지다고 하여 명당이라고 우긴다면 이는 단지 미관적으로 사람들의 기호에 맞추어 설명하는 미관풍수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또 한 가지 경복궁의 흠을 든다면 청계천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청계천의 흐름은 경복궁의 좌향에 맞지 않아 득이 아닌 실로 작용하여 매우 좋지 않은 모습이다. 당시의 사대문 안에 있는 한양 전체를 놓고 본다면 득수와 파구에 해당하는 부분을 한강으로 잡아서 물의 흐름이 맞는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경복궁 자체만을 놓고 본다면 청계천의 흐름은 경복궁의 좌향에 맞지 않는다. 한마디로 경복궁은 뒤로 보이는 북악산만 멋있게 보일뿐 양택으로서는 제대로 갖춰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경복궁의 뒤에 위치한 청와대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 다음으로 인왕산을 주산으로 하자는 무학대사의 주장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인왕산을 주산으로 하여 경복궁을 짓는다고 하면 북악산을 주산으로 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 우선 인왕산이 억세고 강하게 뒤에서 경복궁을 받쳐주면서 충하는 것이 아니라 온화하게 감싸주며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형상이 되는데, 위에서 사진 3과 같은 모습이 된다. 그리고 왼쪽 청룡에 해당하는 부분에 북악산이 우뚝 솟아서(혹자는 흉한 모습이라고 하는 이도 있지만 전혀 흉하게 보이지 않는다) 강하고 힘차게 경복궁이 지어질 곳을 잘 감싸주는 형국이 되며, 이로 인해 남자의 기상이 강하게 세워져 이것이 강력한 왕권으로 나타날 수 있는 자리가 된다.
[인왕산을 주산으로 했을 때 청룡에 힘차게 우뚝 솟은 북악산의 모습]
그 다음으로 백호에 해당하는 부분이 경희궁으로 뻣어 내려간 맥이 되는데 강하면서도 유유히 흘러내려가 매우 좋은 모습이다. 또한 현재의 배화여자대학교에서 뻣어 내려온 맥이 내백호를 구성하고 있어 백호가 이중으로 매우 튼튼하게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안산인 낙산도 유유히 흘러 아주 좋은 모습이 된다. 즉 인왕산을 배경으로 경복궁을 지었을 때는 북악산이 우뚝 솟아 청룡이 강하여 강력한 왕권이 발휘될 수 있으면서도 백호가 균형적으로 잘 조화를 이루게 된다.
[한양 도성도1]
[한양 도성도2]
[한양 도성도3]
[한양 도성도4]
[인왕산을 주산으로 하는 경복궁의 위치]
그리고 이때 경복궁 앞으로 흐르는 청계청의 상류에 해당하는 물의 흐름도 북악산쪽에서 남쪽으로(현재의 자하문 터널방향에서 서울시청 방향으로) 흘러 제대로 구성이 맞는다. 또한 득수와 파구에 해당하는 중랑천의 흐름도 인왕산을 배경으로 하는 경복궁의 배치와 잘 맞아 흠잡을 곳이 없다. 그런데 혹자는 청계천이 나가는 물길이 보이기 때문에 흠이라서 안 된다는 주장을 하는 이도 있는데, 이는 타당하게 받아들일 수가 없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것은 청계천 상류의 흐름을 모르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한양의 고지도를 살펴보면 청계천의 상류는 현재의 자하문 터널 부근에서 서울시청 방향으로 흐르다가 동쪽으로 중량천을 향해 돌아 나가는 모습이다. 인왕산을 배경으로 경복궁을 지으면 한참 오른쪽으로 가서 물길이 방향을 돌아나가는데 이것을 불길하다고 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이러한 물길의 흐름은 인왕산을 배경으로 경복궁을 지어 좌향이 거의 정동향이 되었을 때 제대로 맞는 물의 흐름이다. 또한 양택에 있어서 작은 집에서는 큰 필요가 없지만 궁궐과 같이 큰 규모의 양택에서는 반드시 하수구에 해당하는 부분을 두어야 하는데 청계천으로 나가는 물길이 인왕산을 주산으로 하는 경복궁의 하수구에 해당하는 부분이 된다. 이보다 더 좋은 궁궐터는 한반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청계천의 상류가 서울시청 근방까지 가서 중랑천 쪽으로 돌아나간다고 하여 이것을 불길한 것으로 여기고 인왕산을 주산으로 하는 경복궁이 불가하다고 한다면 북악산을 주산으로 하여 지어진 경복궁은 청계천의 상류가 흘러내려가는 방향(자하문 터널 부근에서 서울시청 방향)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는 더욱 불가한 일이다. 이를 두고 무학대사가 인왕산을 주산으로 삼자고 했을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으니, 무학대사를 청와대 자리를 두고 명당이라고 하며 음택과 양택도 구분 못하는 반풍수쯤으로 여기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참조그림2]
[참조그림3]
[참조그림4]
[연기군 남면의 원수산 일대]
이러한 주산에 근거한 명당론을 바탕으로 행정중심 복합도시로 선택된 연기군 남면의 원수산을 주산이라고 하여 그 앞을 명당이라며 청와대나 정부청사의 부지로 지목하는 이들이 있다.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라 않을 수 없다. 연기군 남면의 원수산 앞에 청와대나 정부청사를 짓는다고 했을 때 뒤로 보이는 산 모양이 멋있는 것 말고 그 어떤 면도 양택으로서 제대로 갖추어진 면이 없다.
과거 백제가 충청도를 포함하는 호남권에 나라를 세우고 충청도에 수도를 정했지만 한 곳에서 오래 머무르지를 못하고 옮겨 다니면서 강력한 왕권도 발휘하지 못하고 고구려 신라의 사이에서 크게 성장하지도 못한 채 패망한 것도 공주, 연기, 부여 어디에도 궁궐이 들어설 자리로 제대로 갖추어진 적합한 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현재 행정중심도시가 옮겨가기로 결정된 곳이 그토록 좋은 곳이라면 백제시대에 그곳을 결코 간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상으로는 한번도 연기군 남면일대에 도읍지가 자리 잡은 적은 없었다. 오늘날과 같이 풍수를 경시하는 사회가 아닌 국가적으로 중시하는 시대에 한번도 선택받지 못한 땅을 두고 이시대의 풍수라는 자들은 명당이라며 정부입장을 옹호하고 있으니 개탄스러운 일이다.
연기군 남면의 원수산 일대와 비슷한 곳이 전북 익산의 미륵산 일대에 있는 왕궁면의 왕궁평성(王宮坪城:모질메 산성)이다. 백제의 무왕이 자신의 고향인 이곳에 궁궐을 짓고 도읍지를 옮기고자 했으나 성사시키지는 못하고 별도(別都:제2의 도읍지)로 활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무왕이 이곳을 별도로 활용한 이후 백제는 무왕의 아들 의자왕에 이르러 멸망의 길을 걷고 말았다. 연기군 남면의 원수산 일대로 행정수도를 옮기고 제2의 수도로 활용한다면 대한민국 또한 백제가 밟았던 패망의 전철을 다시 밟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상으로 정리하자면 양택(陽宅)은 작은 집이든 궁궐이든, 크든 작든 뒤로 보이는 주산(主山)에 의해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주산이 멋있으면 좋겠지만 그보다는 전적으로 집이 들어설 자리가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형국을 갖추고 집을 충(沖)하지 않으면서 포근하게 감싸주고 물의 흐름이 제대로 맞으면서 지리의 이치에 맞을 때만이 명당(明堂)이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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