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는 수행법을 터득했다면 더 이상 수행에 대한 경전(經典)이나 남이 써놓은 법문(法文)을 보지 말고 그 길로 수행에만 전념해야 한다. 수행이 상당한 경지에 도달한 성인(聖人)이 남겨놓은 경전이나 법문을 읽고 자기것화 하는 것은 바로 실패의 지름길이다. 현재에도 많은 이들이 성인이 남겨놓은 글을 읽고 마치 자신이 그것을 체험하여 알고 있는 것처럼 입에 담는 이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자들은 모두 수행에 있어서는 실패자들이다.
그러나 성인의 경전을 보아도 좋은 때가 있다. 수행자의 수행의 경지가 상당한 경지에 이르게 되었을 때 경전을 읽으면 그 내용이 저절로 이해가 된다. 스스로가 수행에 정진하여 앞으로 나아가서 본 것을 경전에 맞추어 보는데, 어찌 이해가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경전의 내용을 미리보고 그것에 자신을 맞추려 해서는 한 치의 발전도 이루기 어렵다. 남이 쓴 것을 아무리 열심히 탐독한들 그것은 결코 자기 것이 되지는 않는다. 영원히 남의 것일뿐이다. 스스로 수행에 전념하여 자신이 한 치의 발전을 이룬 것이 남의 경전 수십 권을 탐독하고 해석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 수행자가 남의 이룩한 경전에 관심을 두게 되면 이것이 오히려 마장으로 작용하여 수행을 실패로 몰고가는 격이 될 뿐이다.
자신이 직접 깨닫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깨달아 보고 쓴 경전을 해석해가며 일생을 바쳐 대중에게는 석학(碩學)으로 인정을 받을 수는 있어도, 그것은 자기것화한 것일 뿐 자신의 것은 아니니 얼마나 가련한 일인가?
학문을 탐구한다고 하여 옛 경전의 문자에 치중하여 해석하는 것은 일평생을 해도 그것은 자신의 공덕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수행이 되지 않을 사람이라면 부득이 남의 경전이라도 읽고 행동하여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하겠지만...
경전을 보고 알게된 지식은 도(道)가 아니다. 스스로 정진하여 보고 깨달아서 아는 것만이 도이다. 문자를 열심히 해석하여 학문적인 지식이 높다고 해도 수행자의 수행이 앞질렀다면 수행자가 위가 되는 것이다. 문자로 진리를 탐독하는 자가 어찌 진리를 눈으로 직접 확인한 수행자를 앞설 수 있겠는가?
자신이 열심히 수행에 정진하여 수행자 자신이 우주의 이치를 보고 깨달아 알게 되면 자신의 경전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