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직전의 프랑스 정부의 예이다. 당시 프랑스는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으로 독일로부터 전쟁배상금을 받을 권리를 확보하고 있었다. 1815년 나폴레옹의 워털루 전쟁 패배와 1870년 프러시아와의 전쟁 패배 후 거액의 전쟁배상금을 지불해야 했던 프랑스로서는 패전국 독일로부터 배상금을 받게 되리라는 것에 대해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중앙정부는 물론이고 지방정부까지 재정지출을 확대하여 전쟁으로 폐허가 된 각종 기간산업시설의 복구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재정지출 확대에 따른 재정적자는 전쟁배상금이 들어오면 갚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독일의 경제가 사상 유례없는 초(超)인플레이션을 겪으면서 심각한 경제난에 처하자 독일은 전쟁배상금을 지불하기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됐다. 프랑스로서는 전쟁배상금을 조금이라도 받기 위해서는 규모를 대폭 줄여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나마도 독일에 나치정권이 들어선 뒤에는 잔액마저 지급을 거부당하고 말았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프랑스는 미국과 영국에 70억 달러에 달하는 전쟁채무까지 지고 있었으며, 이것을 상환해야 하는 처지였다. 이 때문에 프랑스는 심각한 재정적자와 외환사정 악화에 시달리게 됐고, 국내외 신뢰도도 떨어져 프랑화의 가치도 폭락했다.
경제는 불안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고, 자본의 해외도피가 극성을 부렸다. 이런 와중에 내각이 10번이나 바뀌었으며, 정정(政情)불안은 프랑화의 가치폭락을 더욱 부추겼다. 새 내각이 들어선 뒤 감세(減稅)정책을 발표하자, 외국으로 도피했던 자금이 되돌아오면서 환율은 안정되어갔고 외환보유고도 증가하기 시작했다.
외환보유고가 급증하자 프랑스 정부는 통화팽창과 그에 따른 물가불안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외환보유고를 런던 금융시장에 맡겨놓았고, 이것으로도 모자라 파운드화 선물(先物)을 대규모로 매입했다. 이면에는 프랑화의 저평가를 통해 수출을 촉진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그렇지만 외환자금의 해외예치는 국내소득의 해외이전을 의미했고, 수출의 호조 속에서도 국내경기는 상대적으로 부진을 겪었다.
그러나 프랑화의 저평가가 언제까지나 지속될 수는 없었다. 수출이 지속적으로 급증하고 외환보유고가 쌓이자 2년 뒤인 1930년부터 프랑화의 가치가 본격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으며, 그 추세는 1931년에 들어서자 속도가 더욱 빨라져 1931년 중반에는 영국 파운드화에 대한 프랑화의 가치가 한꺼번에 40% 가까이 상승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러한 추세는 1936년 말까지 5년 이상 지속됐고, 그 결과 수출은 결정적인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수출의 부진은 경기부진을 더욱 심화시켰고, 이에 따라 수입도 급감하게 되었다. 1932년부터 1937년까지는 세계경제가 전반적으로 회복되던 때였다. 이 5년 동안에 독일의 공업생산은 2.2배가 증가했고, 미국 캐나다 오스트리아 일본은 1.6~1.8배, 이탈리아와 영국은 1.5배 가까이 증가했다. 그러나 프랑스는 1.1배 증가하는 데 그쳐 프랑스만 경제난을 겪었던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프랑화의 가치가 반대로 떨어지기 시작해 1936~38년 중반까지 세 차례에 걸쳐 폭락했다.
정치는 다시 불안정해졌고, 사회주의 계열은 총집결해 인민전선을 형성했다. 권력을 쥐게된 인민전선은 급진적인 정책을 양산해 냈다. 독과점 억제, 부정 상행위 금지, 의무교육기간 연장, 연금생활자와 군인의 생활보장, 사회보장제 확충 등은 물론이고 주 40시간 근무제까지 도입했다. 급진적인 경제정책은 당연히 국제경쟁력과 성장잠재력을 약화시켰고 자본은 봇물 터지듯 해외로 유출됐다.
경제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게 되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프랑스는 나치 독일에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순식간에 점령당해야 했다. 독일과 이탈리아의 재무장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지만 프랑스는 극심한 경제난 때문에 아무런 대비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료출처:킨들버거의 ‘대공황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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