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정선 비봉산(飛鳳山) 기슭에는 신라시대의 고승(高僧)인 의상대사(義湘大師)[625∼702]가 창건했다는 관음사(觀音寺)가 있었던 관음동(觀音洞)과 의상대사가 수행했던 자봉대(紫鳳臺)[의상대]가 있다. 자봉대의 절벽아래 조양강(朝陽江)가의 길옆에는 석벽에 화주일춘(化主一春)이라는 네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 글자에는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전설이 있다. 전설인즉,
옛날 관음사(觀音寺)에 일춘(一春)이라고 하는 중이 있었는데, 불도에 정통하여 세인(世人)의 존경을 받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말이라고 하면 부처님의 말씀처럼 철석같이 믿고 따랐는데, 그러던 어느 날 관음사로 오가는 길이 불편하여 일춘은 관음벼루 절벽 밑에다 인마(人馬)가 통행할 수 있는 교량(橋梁)을 놓기로 하고 민가에서 재물(財物)과 철물(鐵物)을 시주받았다. 그러나 처음에 마음먹은 것과는 달리 이를 팔아 착복하여 큰 부자가 되었다. 이후 불문(佛門)에 죄(罪)를 지은 일춘은 부처님의 벌(罰)을 받아 큰 먹구렁이로 변해서 관음사로 가는 길목을 가로막아 행객(行客)은 끊어지고 절은 얼마 안가서 쑥대밭이 되어버렸다. 그 후 10여년의 세월이 그렇게 흘러갔다. 어느 해 봄.
삼척 지방에서 청운(靑雲)의 뜻을 품고 한양으로 과거(科擧)를 보러 올라가던 네 사람의 선비가 정선을 지나다가 주막에서 유숙(留宿)을 하게 되었다. 그 가운데 한 선비의 꿈에 백발(白髮) 노승(老僧)이 나타나 합장(合掌)하며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말하기를,
“소승(小僧)은 이곳 관음사의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물욕(物慾)에 눈이 멀어 불문(佛門)에 죄를 지은 댓가로 부처님으로부터 벌(罰)을 받아 뱀으로 변신한지 오래되었습니다. 지금 다행하게도 귀인(貴人)을 만났으니 바라건 데 공(公)께서는 노고(勞苦)를 아끼지 말고 관음벼루 석벽에 ‘화주일춘’이라는 네 글자를 새겨서 오고가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여 주신다면 공께서는 이번 과거에 급제할 것이며, 소승(小僧)도 불문의 죄를 용서받게 될 것이니 소승의 부탁을 잊지 마시고 꼭 들어주십시오.” 하는 것이었다.
놀라서 잠에서 깬 선비는 너무나 생생하고 기이한 꿈이라고 여겨져 아침에 일행에게 간밤의 꿈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리고 주막주인에게 꿈 이야기를 하고 사실 여부를 물어보니, 역시 과거에 그런 일이 있었다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선비들은 노승이 알려준 대로 석벽에 가서 글자를 새길 준비를 하였는데, 그때 한 선비가,
“혼자 급제(及第)하기보다는 우리 넷이 다같이 급제한다면 얼마나 기쁜 일이겠는가? 그러니 각각 한 글자씩 새기세.”
그래서 네 선비는 각각 한 글자씩 ‘化主一春’ 네 글자를 새겨 놓고 한양으로 떠났다. 그 후 신기하게도 네 선비는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금의환향(錦衣還鄕)했으며, 관음벼루 절벽 아래 가로누어 행인의 통행을 막던 큰 구렁이는 자취를 감추고 사람들은 마음 편하게 이곳을 통행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단순히 강원도 산간의 곳곳에 전해지는 다른 전설과 같이 생각한다면 그저 의미없는 이야기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의상대사가 수행했던 자봉대와 이 전설을 연관지어 생각해보면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전설이다.
승려(僧侶)라고 하면 본디 수행(修行)을 하기 위해 속세(俗世)와의 인연을 끊고 불가에 입문한 사람을 두고 부르는 명칭이다. 그런데 그런 승려가 속세의 허황된 생각들을 버리지 못하고 재물욕심을 내어 시주받은 것을 착복했다는 것은 주색(酒色)에 빠져 수행을 멀리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 죄로 뱀으로 환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화주일춘이라는 글자도 한자로는 ‘化主一春’이지만 본래 노승이 꿈에 나타나 새겨주기를 바랬던 것은 화주일춘(花酒一春)이었는데 잘못 새겨진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노승이 꿈에 나타나 말한 화주일춘이라고 말한 소리를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들이 임의대로 한자를 생각하여 자신들의 과거급제를 기원하는 뜻으로 화주일춘(化主一春)이라고 새겼다고 볼 수 있다. 뜻을 그대로 해석해보아도 봄날에 과거를 보러가던 자신들이 주인공이 된다는 의미를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승이 꿈에 나타나 말했던 화주일춘은 ‘花酒一春’ 즉 화주(花酒)는 주색(酒色)을 뜻하고 일춘(一春)은 일장춘몽(一場春夢)을 줄여서 새겨주기를 바랬다고 볼 수 있다. 화주(花酒)라는 용어는 ‘기생을 사이에 두고 술을 마시는 마신다’는 뜻으로 그대로 주색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즉 사람이 따뜻하고 재물이 있으면 음욕(淫慾)이 생긴다는 옛말처럼 관음사에 있던 중이 시주받은 것을 착복하여 이것으로 주색에 빠져 수행자의 본분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다 벌(罰)을 받아 구렁이로 변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주색은 한 낫 봄날의 꿈에 불과하다는 의미로 화주일춘(花酒一春)이라 하고 주색(酒色)과 같이 속세 사람들이 갖는 욕심이 모두 덧 없는 것임을 깨닫고 마음을 비운 채 수행에만 전념하라는 의미로 후세에 전한 것이라 여겨진다. 즉 관음동 자봉대의 자리가 수행자에게 있어서는 특히 주색과 같이 속세의 사람들이 갖는 마음의 욕심을 모두 버리고 비워야만 수행에 성공할 수 있는 자리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 그 옛날 그곳에서 수행하던 수행자가 그런 사실을 알게 되어 훗날 자봉대에서 수행할 다른 수행자를 위해 그러한 전설로 남겨놓은 것이라 여겨진다.
실제로 관음동의 자봉대(의상대)는 수행자가 수행을 하면서 딴 마음(이성에 대한 생각 등)을 먹거나 일체의 마음을 비우지 못하면 순식간에 색마(色魔)에게 당하여 수행을 그르치게 되는 자리로, 수행하는 동안 모든 마음을 비우고 허허롭게 하여 수행에 임하지 않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는 곳이다. 또한 관음동에 기거하면서 그 옛날 관음동에 기거하며 속세의 허황된 생각들을 버리지 못하고 주색에 빠졌던 일춘처럼 수행자의 본분에서 벗어나 다른 짓을 하고 있다면 그 자리를 떠나는 것이 좋다. 그곳에 오래 머물러 본들 어떠한 보람이이나 성취도 얻지 못할 것이며 그 자리도 그런 사람을 허용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옛날 관음사(觀音寺)에 일춘(一春)이라고 하는 중이 있었는데, 불도에 정통하여 세인(世人)의 존경을 받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말이라고 하면 부처님의 말씀처럼 철석같이 믿고 따랐는데, 그러던 어느 날 관음사로 오가는 길이 불편하여 일춘은 관음벼루 절벽 밑에다 인마(人馬)가 통행할 수 있는 교량(橋梁)을 놓기로 하고 민가에서 재물(財物)과 철물(鐵物)을 시주받았다. 그러나 처음에 마음먹은 것과는 달리 이를 팔아 착복하여 큰 부자가 되었다. 이후 불문(佛門)에 죄(罪)를 지은 일춘은 부처님의 벌(罰)을 받아 큰 먹구렁이로 변해서 관음사로 가는 길목을 가로막아 행객(行客)은 끊어지고 절은 얼마 안가서 쑥대밭이 되어버렸다. 그 후 10여년의 세월이 그렇게 흘러갔다. 어느 해 봄.
삼척 지방에서 청운(靑雲)의 뜻을 품고 한양으로 과거(科擧)를 보러 올라가던 네 사람의 선비가 정선을 지나다가 주막에서 유숙(留宿)을 하게 되었다. 그 가운데 한 선비의 꿈에 백발(白髮) 노승(老僧)이 나타나 합장(合掌)하며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말하기를,
“소승(小僧)은 이곳 관음사의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물욕(物慾)에 눈이 멀어 불문(佛門)에 죄를 지은 댓가로 부처님으로부터 벌(罰)을 받아 뱀으로 변신한지 오래되었습니다. 지금 다행하게도 귀인(貴人)을 만났으니 바라건 데 공(公)께서는 노고(勞苦)를 아끼지 말고 관음벼루 석벽에 ‘화주일춘’이라는 네 글자를 새겨서 오고가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여 주신다면 공께서는 이번 과거에 급제할 것이며, 소승(小僧)도 불문의 죄를 용서받게 될 것이니 소승의 부탁을 잊지 마시고 꼭 들어주십시오.” 하는 것이었다.
놀라서 잠에서 깬 선비는 너무나 생생하고 기이한 꿈이라고 여겨져 아침에 일행에게 간밤의 꿈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리고 주막주인에게 꿈 이야기를 하고 사실 여부를 물어보니, 역시 과거에 그런 일이 있었다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선비들은 노승이 알려준 대로 석벽에 가서 글자를 새길 준비를 하였는데, 그때 한 선비가,
“혼자 급제(及第)하기보다는 우리 넷이 다같이 급제한다면 얼마나 기쁜 일이겠는가? 그러니 각각 한 글자씩 새기세.”
그래서 네 선비는 각각 한 글자씩 ‘化主一春’ 네 글자를 새겨 놓고 한양으로 떠났다. 그 후 신기하게도 네 선비는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금의환향(錦衣還鄕)했으며, 관음벼루 절벽 아래 가로누어 행인의 통행을 막던 큰 구렁이는 자취를 감추고 사람들은 마음 편하게 이곳을 통행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단순히 강원도 산간의 곳곳에 전해지는 다른 전설과 같이 생각한다면 그저 의미없는 이야기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의상대사가 수행했던 자봉대와 이 전설을 연관지어 생각해보면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전설이다.
승려(僧侶)라고 하면 본디 수행(修行)을 하기 위해 속세(俗世)와의 인연을 끊고 불가에 입문한 사람을 두고 부르는 명칭이다. 그런데 그런 승려가 속세의 허황된 생각들을 버리지 못하고 재물욕심을 내어 시주받은 것을 착복했다는 것은 주색(酒色)에 빠져 수행을 멀리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 죄로 뱀으로 환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화주일춘이라는 글자도 한자로는 ‘化主一春’이지만 본래 노승이 꿈에 나타나 새겨주기를 바랬던 것은 화주일춘(花酒一春)이었는데 잘못 새겨진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노승이 꿈에 나타나 말한 화주일춘이라고 말한 소리를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들이 임의대로 한자를 생각하여 자신들의 과거급제를 기원하는 뜻으로 화주일춘(化主一春)이라고 새겼다고 볼 수 있다. 뜻을 그대로 해석해보아도 봄날에 과거를 보러가던 자신들이 주인공이 된다는 의미를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승이 꿈에 나타나 말했던 화주일춘은 ‘花酒一春’ 즉 화주(花酒)는 주색(酒色)을 뜻하고 일춘(一春)은 일장춘몽(一場春夢)을 줄여서 새겨주기를 바랬다고 볼 수 있다. 화주(花酒)라는 용어는 ‘기생을 사이에 두고 술을 마시는 마신다’는 뜻으로 그대로 주색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즉 사람이 따뜻하고 재물이 있으면 음욕(淫慾)이 생긴다는 옛말처럼 관음사에 있던 중이 시주받은 것을 착복하여 이것으로 주색에 빠져 수행자의 본분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다 벌(罰)을 받아 구렁이로 변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주색은 한 낫 봄날의 꿈에 불과하다는 의미로 화주일춘(花酒一春)이라 하고 주색(酒色)과 같이 속세 사람들이 갖는 욕심이 모두 덧 없는 것임을 깨닫고 마음을 비운 채 수행에만 전념하라는 의미로 후세에 전한 것이라 여겨진다. 즉 관음동 자봉대의 자리가 수행자에게 있어서는 특히 주색과 같이 속세의 사람들이 갖는 마음의 욕심을 모두 버리고 비워야만 수행에 성공할 수 있는 자리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 그 옛날 그곳에서 수행하던 수행자가 그런 사실을 알게 되어 훗날 자봉대에서 수행할 다른 수행자를 위해 그러한 전설로 남겨놓은 것이라 여겨진다.
실제로 관음동의 자봉대(의상대)는 수행자가 수행을 하면서 딴 마음(이성에 대한 생각 등)을 먹거나 일체의 마음을 비우지 못하면 순식간에 색마(色魔)에게 당하여 수행을 그르치게 되는 자리로, 수행하는 동안 모든 마음을 비우고 허허롭게 하여 수행에 임하지 않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는 곳이다. 또한 관음동에 기거하면서 그 옛날 관음동에 기거하며 속세의 허황된 생각들을 버리지 못하고 주색에 빠졌던 일춘처럼 수행자의 본분에서 벗어나 다른 짓을 하고 있다면 그 자리를 떠나는 것이 좋다. 그곳에 오래 머물러 본들 어떠한 보람이이나 성취도 얻지 못할 것이며 그 자리도 그런 사람을 허용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공지 | 일본의 일장기 | 三元 | 2021.01.23 | 853 |
공지 | 천상에서 인간에게 내린 뇌화침법雷火鍼法 [1] | 삼원회 | 2019.05.09 | 1809 |
공지 | 선도수행자仙道修行者의 호흡법呼吸法 | 삼원회 | 2016.02.11 | 5053 |
79 | 수행자에게 색마(色魔)의 접근 [2] | 현도학회 | 2004.12.17 | 6507 |
78 | 주변에서 마음을 괴롭히는 일들이 많은데 어찌해야 할지 | 박재훈 | 2006.05.11 | 3630 |
77 | [답변] 마음을 비울 수 있는 기회로 삼기를... | 현도학회 | 2006.05.11 | 3378 |
76 | 프랑스의 외환위기 사례 | 현도학회 | 2006.05.03 | 2419 |
75 | 잘못된 환율정책으로 인해 초래되고 있는 경제위기 [1] | 현도학회 | 2006.05.02 | 2977 |
74 | 한국의 군사력 이대로는 안 된다 | 현도학회 | 2006.04.27 | 2267 |
73 | 또다시 불거지는 독도문제 | 현도학회 | 2006.04.15 | 1719 |
72 | 위협받는 민족의 정통성 | 현도학회 | 2006.04.08 | 2147 |
71 | 한양의 뒷문인 숙정문 | 현도학회 | 2006.04.06 | 2167 |
70 | 한식에 왠 성묘를? | 현도학회 | 2002.12.12 | 2797 |
» | 화주일춘 | 현도학회 | 2006.03.23 | 2543 |
68 | 천년을 이어진 정선의 화두 | 현도학회 | 2006.03.23 | 2492 |
67 | 역장(逆葬)에 대한 잘못된 인식 | 현도학회 | 2006.03.08 | 1989 |
66 | 비염환자의 조식수행 부작용 | 현도학회 | 2006.01.31 | 2242 |
65 | 과거를 잊은 국가는 미래가 없다 | 현도학회 | 2006.01.24 | 1847 |
64 | 망상에 빠진 정부의 대북지원정책 [1] | 현도학회 | 2005.11.07 | 2961 |
63 | 24절후신명 | 현도학회 | 2005.12.26 | 2687 |
62 | 생식에 대한 잘못된 상식 | 현도학회 | 2005.12.23 | 1888 |
61 | 남발하는 국책사업 속에 멀어져가는 남북통합 | 현도학회 | 2005.12.22 | 1780 |
60 | 대설 전 소설절기에 뇌성이 치는 것은....... [7] | 현도학회 | 2005.11.28 | 273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