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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원평론

봉우 권태훈 옹의 지리관

현도학회 2005.03.21 11:30 조회 수 : 3778


봉우 권태훈 옹(翁)의 지리관에 대해서는 그의 구술을 기록한 책과 대담 내용을 담은 기록에서 잘 나타나 있다.
비교적 자세하게 봉우의 지리관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는 책은 봉우의 구술을 기록한 ‘천부경의 비밀과 백두산족 문화’ 의 지리학 대요인데, 이 부분을 자세하게 읽어보면 앞뒤가 상반되게 모순적인 언급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지리학대요의 전반부에서는 지리와 천문을 결부시켜 천문을 알고 지리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봉우 자신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내세우며,

“예로부터 천문을 아는 사람으로서 지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는 법이며, 따라서 지리를 알면서 천문을 모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
“성수(星宿)가 뭔지도 모르고 지리를 안다고 하는 것은 모두 가짜들이란 소리야” 하는 언급을 하고 있다.

또한 산신과 지리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부분까지 언급하며 봉우의 능력을 과시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봉우가 구술하기를, 지리학이 천문과 결부되고 산신도 논하는 학문이라고 말하면서 후반부의 지리학에 대한 길흉화복론에서는 그 유래와 지리의 이치에 따른 길흉화복을 완전히 부정적으로 피력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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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경의 비밀과 백두산족 문화'에 구술된 봉우 권태훈 옹의 지리풍수에 대한 유래와 길흉화복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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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학이 생겨난 첫째 원인은 옛날에는 사람이 죽으면 그냥 내다 버렸어. 멀찌감치 내다버리니까 개나 돼지가 막 뜯어먹는데 아무래도 보기가 싫단 말야. 그래 송장을 갖다 놓고 그 위에다 나뭇짐을 쌓아 놓았는데 이 역시 시체가 썩으면 개미들이 꾀여 그걸 물고 사방으로 돌아다니니까 볼 수가 없어.

그래서 묘를 쓰라고 했는데 이때 사람들이 묘를 쓰게 하기 위해, 묘자리를 잘 택해 매장하면 길하고 복 받으며, 잘못 쓰면 흉하고 화가 온다는 길흉화복론을 앞세웠던 것이야. 그래서 나라 임금이나 공신들 묘 같은 것밖에 없던 때에 일반 국민들까지도 묘를 쓰기 시작했던 거야.

지리학의 대요는, “하늘에서 아주 만들어 놓아서 꼼짝도 변하지 않을 자는 길흉화복이나 좌향 수법을 하나도 논하지 말고 써라” 그랬어.

예를 들어 대도시의 아파트 같은 곳에는 좌향이 하나도 필요 없는 것이야. 또한 지리설로 말하자면, 나라의 능을 그 나라에서 제일 잘 보는 사람이 잡았을 거 아냐? 그런데 그 자손들이 잘 됐나? 또 택일을 한다면, 나라의 황후 혼인 택일하는데, 택일 제일 잘하는 이로 했을 거 아냐?

그런데 임금 황후 쳐놓고 호강한 황후 하나도 없어. 공주 시집가는데, 시집갈 때 사위 선도 보고 택일도 얼마나 좋은 택일을 했을 거야. 그런데 여기 지금 나라의 공주집이라고 해서 몇 집 빼놓고 잘 된 집이 없어. 그걸 봐. 그걸 보면 풍수지리설이 길흉화복이 안 맞는다는 걸 알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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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우일기에 구술된 봉우의 지리풍수에 대한 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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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풍수지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 허망한 것으로, 생각할 가치가 없어요. 풍수는 원래 사람이 죽으면 그 시신을 아무데나
내다 버리는 데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습속을 미화하기 위해, 또는 호사가(好事家)들이 꾸며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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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우 자신의 지리학에 대한 능력을 과시할 때는 지리학에 천문과 산신까지 언급하면서, 그 유래가 호사가들의 말장난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지리의 이치에 따른 길흉화복이 맞지 않는다니 이 얼마나 모순적인 언급인가.

예전에 지리에 정통했다고 하는 한 노인이 방송매체에 나와 명당이 존재하고 그 발복은 있다고 언급하다 끝날 쯤에는 화장하는 것이 좋다고 하는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언급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지리풍수가 반드시 천문을 알아야만 지리의 이치를 알 수 있는가?

물론 천문을 알고 지리의 이치를 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지리학의 뛰어난 대가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나 능력의 차이는 있다고 해도 천문을 모른 채 지리학을 논한다고 가짜라고 매도할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현재까지 전해지는 지리풍수학의 학문체계가 완전히 부정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지리의 이치를 깨달은 이가 어디 봉우 한 명뿐 이던가?

세상에 위서가 많기는 하지만, 많은 책들 중에는 수행으로 지리의 이치를 깨달은 도인이 후세에 그 이치를 좀 더 쉽게 알 수 있도록 설명한 진서들이 존재한다. 지리의 이치라는 것이 말과 글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일정수준까지는 그 원리를 말과 글로써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진서를 얻어 학문으로 배운다면 지리의 이치에 완전히 통달하지는 못하더라도 흉지(凶地)를 피하고 길지(吉地)를 얻는 수준은 될 것이다.

그러한 이들이 좀더 지리학에 뜻이 있어 그 오묘한 진리를 체득하고자 한다면 수행에 정진하여 성공한다면 그 이치를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다.

그런데 반드시 천문을 알아야 지리를 안다고 하는 것은 봉우 자신만을 내세우고 현재의 지리풍수론을 부정시켜 사람들에게 지리풍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도록 하고자 했던 언동이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봉우가 지리풍수론에 천문․지리를 묶어서 논하고 산신(山神)까지 등장하는 대단한 학문이라고 언급한데 반해, 지리풍수가 호사가들의 말장난으로 만들어진 학문이고 지리의 이치에 따른 길흉화복(吉凶禍福)이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봉우 권태훈 옹 스스로가 수행자라면 결코 지리풍수가 호사가들에 의해 말장난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말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지리풍수는 이 땅에 도학(道學)이 자리 잡은 이래 수행자들에 의해 전해진 것이지 호사가(好事家)들의 말장난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래서 지맥통령경(地脈通靈經)과 같이 지리풍수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는 주문수행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지리풍수의 길흉화복에 대해서는 먼저 봉우 자신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길흉화복도 없는 지리학에 정작 본인은 그토록 뛰어나다고 천문, 산신까지 언급하며 내세운 이유가 무엇이며 생전에 지관역할은 왜 한 것이고 자신의 조상의 묘를 이장하기 위해 그토록 애쓴 이유가 무엇인가.

봉우 권태훈 옹이 생전에 자신의 조상을 명당에 모시기 위해 애를 썼다는 것은 봉우의 구술내용에도 나타나 있으며, 여러 집안의 조상을 이장해 주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들도 많이 있다.

그러면서 후세까지 여러 사람들에게 읽힐 책에 그 유래와 길흉화복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구술한 것은 가히 그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지리풍수의 이치에 따른 길흉화복은 엄연히 존재한다.

현재 튼튼한 집안들의 조상 산소를 살펴보면 좋은 자리에 제대로 조상을 모신 산소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조상의 묘 하나를 잘 썼다고 사람의 인생이 갑자기 180도 달라져서 항상 순탄대로만을 달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산소가 있으면 삶에 기복은 있으되 그 기복의 높이가 다르고 또한 그 집안에서 훌륭한 인물도 나오며 복을 받는 것은 분명하게 존재한다.

그런데 봉우가 지리의 길흉화복을 부정하기 위해 예를 든 왕릉이 모두 제대로 좋은 자리에 들어선 것만도 아니고 나라에는 국운에 따라 흥망성쇠가 좌우되기도 한다. 또한 왕가에서 택일만을 제대로 했다고 해서 만사가 항상 형통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조선을 예로 든다면 중원땅에 세워진 지나족의 여러 나라들이 몇 백년을 이어가지도 못하고 망했던 것과는 달리 풍파가 있기는 했지만 이씨에 의해서 518년을 이어졌다는 것은 왕릉의 길흉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왕릉이나 왕가의 택일이 반드시 최고의 자리와 최고의 택일이 활용 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 정치적인 입김이 작용하여 왕에게는 최고로 인식이 되었을 수도 있다.

조선시대 지어진 경복궁의 자리를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경복궁의 위치는 무학대사가 터를 잡은 곳도 아니고 정도전에 의해서 그가 조선시대를 통틀어 신권정치(臣權政治)의 기틀을 만들기 위해 잡은 자리이다. 제대로 왕이 힘을 발휘하여 강력한 왕권정치를 이룰 수 있는 자리는 인왕산(仁王山) 앞에서 동쪽을 바라보는 자리이다.


그런데 봉우 자신이 지리풍수의 길흉화복을 부정하는 것과는 상반되게 봉우 자신을 지리풍수에서 대단한 사람인 듯이 피력했으면서 왜 그가 이장을 했던 제자들은 대부분이 매우 어렵게 되거나 파산하고 일찍이 요절하는 이들이 생겨났는가 하는 것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이들 중에는 봉우의 수행법대로 수행하여 상당한 수준에 올랐던 인물들이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권오훈과 설초 김용기라는 인물이다.

권오훈은 봉우가 말하기를 그의 지도아래 원상수행을 하여 1년 만에 12관절을 관통했다고 하는 뛰어난 제자였다. 권오훈의 집안은 당시 매년 곡식을 2000석이나 거둬들이며 부를 누리던 집안이었는데, 봉우가 그 집안의 조상의 묘를 이장한 후 완전히 파산했다고 전하며 권오훈이라는 인물도 총에 맞아 일찍이 요절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토록 지리풍수에 뛰어났다고 하는 봉우가 그 집안이 잘 되도록 이장을 해주었다면 최소한 당시의 운이 지속되거나 더욱 상승되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인생에 기복이 없을 수는 없지만 완전히 파산하고 요절했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또한 설초 김용기라는 인물도 봉우의 지도아래 원상수행과 조식수행을 하여 상당한 경지에 올랐다고 전해지는 인물이다. 그러나 설초도 그 집안의 산소를 봉우가 이장한 이후에 일찍이 요절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설초는 그의 생전에 봉우를 찾아가 질문을 하면 답해주지 않자 여기 아니면 배울 곳이 없는가 하고 뒤돌아 선 것이 3번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설초가 3번이나 봉우를 배신했다고 언급하면서 “배신하면 일찍 죽는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그러나 누가 누구를 배신한 것인지는 객관적인 판단을 해야 할 것이다. (제자가 스승에게 알고자 질문하는 것이 배신인가, 답을 해주지 않는 것이 배신인가?) 이러한 말은 설초의 요절의 원인을 설초 본인에게로 돌리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 아닌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하필이면 이처럼 가장 뛰어났다고 하는 이들이 일찍이 요절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러한 일들에 변명하기 위해 지리풍수에 그토록 뛰어났다고 하는 봉우가 지리풍수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결국 봉우 권태훈 옹(翁)이 지리풍수에 대해서 자신은 대단한 사람으로 부각시켜 사람들에게 신뢰를 가지도록 함과 동시에 그 신뢰를 바탕으로 모순적으로 길흉화복을 부정하고 그 유래에 대해서도 호사가들의 말장난에서 생겨났다고 한 것은 이 땅에서 지리풍수를 완전히 소멸시켜 지리의 이치에 따라 무덤을 쓰는 이가 없도록 하여 우리민족에서 지리풍수의 이치에 따라 인물이 나오는 것을 막고자 했다고 여기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지리풍수의 무용론이 나오면서부터 이 땅에서 화장하고 납골하는 풍조가 점차 만연해져 좋은 자리에 모셔져 있던 조상까지 파내서 화장하고 있는 것은 큰 문제이다.

“지리풍수는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학문이다.”

우리민족의 웅비의 시기가 다가오는 지금 지리의 이치에 따라 조상을 모시고 발복하여 훌륭한 인물이 나오고 복을 받는 것이 결코 한 집안 한 개인의 일만은 아니다. 이 땅의 우리민족에게서 훌륭한 인물이 나오고 복을 누리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은 결국 우리민족의 훌륭한 인재요, 국가와 민족이 번영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리의 이치는 부정되어서도,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인식이 심어져서도 안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봉우의 좌우명대로 가고가는 중에 알게 되었고 행하고 행하는 중에 깨닫게 되었다. 매 강연마다 봉우는 민족주의자를 자칭(自稱)하고 우리민족의 대운을 강조하며 준비할 것을 외쳐댔지만, 실질적으로 봉우가 남긴 행적(行蹟)에서는 그의 명성과 위치를 이용하여 우리민족을 절망의 길로 몰고 있었다고 여기지 않을 수 없다.

[참고자료]
‘천부경의 비밀과 백두산족 문화’ 의 p303~p313의 지리학 대요
‘봉우일기’ 2권의 p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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