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면 신선이 된다 (逆則爲仙)
용호비결에서는 순즉위인(順則爲人), 역즉위선(逆則爲仙)이라 하여 거꾸로 가면 신선이 된다고 하였다. 도가에서 신선이 되어 하늘에 오른다고 함은 궁극의 깨달음을 얻는 해탈을 의미한다. 이 문구는 정기신과 함께 도에 이르는 이치를 설명하므로, 이 곳에서 설명을 하고자 한다.
역으로 간다는 말은 우주의 생성 발전과정에 역행한다는 말이다. 거꾸로 간다는 말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우주생성에 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개벽(開闢) - 우주의 생성
현재는 태초에서 비롯되었으니 태초에는 아무런 형체도 없이 아득하기만 하여 혼원일기(混元一氣)였다. 혼원일기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고 완벽하게 비어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태허(太虛)라고 한다.
여기서 태극(太極)이 생기며 맑은 기운으로 먼저 하늘(陽)이 열리고 다음에 남은 탁한 기운은 땅(陰)이 되며 천지가 개벽(開闢)을 하였는데, 이를 일컬어서 하나(태극)가 둘(음양)을 낳았다고 하는 것이다. 하늘과 땅은 만물(셋)을 낳았다. 셋은 사상(四象)을 낳고, 사상은 팔방(八方-팔괘八卦)이 되고, 팔괘(八卦)는 분화하여 육십사(六十四)괘가 되고, 64괘(卦)는 또 384효(爻)로 변하고 다시 세상만사로 분화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우주만물의 이러한 일정한 순환법칙을 상징적으로 설명한 것이 바로 주역이다.
거꾸로 간다는 의미..
용호비결의 역으로 간다는 문장은 마음이 현재로부터 천지가 개벽하기 이전인 태허(太虛-태초)의 방향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도 태초가 비어있는 상태이므로 마음을 태초의 상태와 같이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마음은 비우자고 해서 비워지는 것이 아니다. 정기신을 길러 신의 밝기가 태초에 미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밝아야 비워지는 것이다.
시공을 초월하여 태허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신이다. 조식수행으로 신을 연마하여 허(虛)로 돌아가면(鍊神還虛) 태허(太虛)와 더불어 그 마음을 함께 하여 궁극(窮極)의 깨달음(해탈)에 이르게 된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귀근(歸根)이나 복명(復命), 귀원(歸元) 그리고 참동계와 용호비결에 보이는 귀근복명(歸根復命) 혹은 귀복(歸復)이니 하는 문구들을 모두 이것을 이르는 말이다. 불가(佛家)에서는 이를 반본귀진(返本歸眞)이라 한다.
계제(階際)의 구분
도가에서는 궁극의 경지에 이르기까지를 초계(初階)에서 시작하여 재계(再階), 삼계(三階) … 구계(九階)의 아홉 단계로 계제를 나누고 있다. 계제는 신의 밝기가 태허를 향하여 거꾸로 어디까지 갔는가에 따라서 구분된다.
소주천을 마치고 대주천으로 진입하게 되면 초계진입이며 대주천을 완성하고 결태를 이루게 되면 재계진입이다. 원신을 투출하게 되면 삼계이고, 벽곡(음식을 끊음)수행을 마치면 4계진입이라 한다. 이상은 필설난언(筆說難言)이므로 소개하기가 곤란하다.
참고로 동양에서 사람을 구분할 때 군자(君子), 대인(大人), 진인(眞人), 신선(神仙)으로 구분하는 것도 도의 계제(階際)에 따라 분류한 것이다.
깨달음은 양파껍질처럼..
도에서의 깨달음은 마치 양파껍질이 벗겨지듯이 단계별로 온다. 각 단계를 통과할 때마다 인간 세상에서는 그 무엇으로도 도저히 경험할 수 없고, 말로 표현할 수도 없는 황홀한 희열감을 느끼면서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내가 바뀐 것인지 세상이 바뀐 것인지 분간을 할 수 없이 한 순간에 나도 바뀌고 세상도 바뀐다.
그 동안 알 수 없었던 것들은 한 순간에 ‘아, 이 것이 아니었구나’하며 모든 의혹이 한꺼번에 풀리면서 깨닫게 된다. 우연이라고 알았던 것은 필연으로 바뀌고, 이전에는 알 수 없었던 만유에 대한 인과(因果)를 알게 된다.
천부경에 나오는 1에서 10까지에 대한 이해와 그리고 삼일신고를 비롯한 경전의 내용들에 대한 이해가 한 순간에 깊어진다.
무극(無極)이 태극(太極-1)을 낳아 음양(陰陽-2)을 이루고, 음양은 삼합(三合-3)으로 생성하고, 사상(四象-4)으로 변화하며 … 이러한 이치 또한 인과로 연결되어 만유는 항상 일정한 이치로 생성 변화하게 되는 것을 알게 된다.
따라서 모든 것은 우연이 없으며 필연(必然)만이 있는데, 다만 우리가 그것을 알지 못하므로 불가사의나 우연으로 여기는 것이다.
계제(階際-단계)가 높아지면서 이러한 깨달음은 그 깊이가 차츰 심오해 지고 느끼는 희열감도 더욱 커지는데, 세상에는 이러한 것들을 표현할 말이나 문장이 없으며 마음으로만 느끼고 알 수 있다.
궁극에 가면 만유에 대한 모든 이치를 알게 되어, 의문은 완전히 사라지고 우주와 내가 하나 되어 완벽한 자유, 즉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조식수행에서는 초계에서 백회가 열릴 때 처음으로 이런 경험을 하게 되는데 불교에서 말하는 초견성(初見性)에 해당한다. 궁극의 깨달음(해탈)을 한 생애에서 완성할 수는 없다.
노자나 석가, 공자처럼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윤회를 거듭하며 수행을 해야 가능한 일이다. 전생에 수행을 하지 않고 현세에서 처음 도를 만나 인연을 맺었다 하더라도 열심히 하면 계제에는 오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