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메뉴 건너뛰기

삼원평론

[답변] 그렇게 보기는 어려울 듯 합니다.

현도학회 2005.03.22 12:05 조회 수 : 3507


[선달 (先達): 조선 시대에, 과거에 급제는 하였으나 벼슬길에 오르지 못한 사람을 일컫던 말.]

선달(先達)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본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봉우 권태훈 옹의 구술에서는 이율곡이 병조판서였을 때 구봉과 함께 길을 가다 이순신이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소리를 듣고 율곡에게 이순신을 한번 데려오도록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급 중에 봉우 권태훈 옹은 율곡이 "병조판서 적인데 병조판서 적인데" 하고 두번이나 강조하는 부분이 있으며, "이선달 님이 거기서 가르친다고 그러거든요. 이선달이여 그때" 하고 이순신이 당시 선달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율곡은 1582년 정월에 이조판서(吏曹判書)에, 8월에 형조판서(刑曹判書)에 임명되었다가 병조판서(兵曹判書)에 임명된 것은 1582년 12월 입니다. 그래서 1583년 9월에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에 임명되고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제수되기 전까지 병조판서를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당시에 선동필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1576년 2월에 무과에 급제했고 동년 12월에 함경도 동구비보의 권관이 됬습니다. 근 1년의 선달생활을 한것입니다." 에 해당하는 기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봉우 권태훈 옹의 말에서도 모순되는 부분은 1582년 12월 이후 율곡이 병조판서였던 시기에 이순신을 선달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선달이었을 때 벼슬이 없으니까 당연히 애들 글을 가르치고 있었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이순신은'1582년 5월 훈련원(訓鍊院) 봉사(奉事)[종8품]로 복직되었으며, 1583년 7월 함경도(咸鏡道) 남병사(南兵使)의 군관(軍官)이 되다' 하는 기록은 율곡이 병조판서였던 시기(1582년 12월~1583년 9월)에 이순신은 이미 관직에 있던 시기인데 선달이었다고 한 것은 말의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입니다.

즉 봉우 권태훈 옹의 '이순신이 선달이었다' 하는 언급은 이순신이 벼슬에 나가기 전에 구봉 송익필을 만났다는 것에 맞추려고 없는 말을 만들다 보니 이순신의 관직시기와 율곡의 병조판서 시기를 고려하지 못하고 붙여진 언급이라 여길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들이 봉우 권태훈 옹의 이순신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더욱 의심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상[銓相]은 병조판서와 이조판서를 통칭하여 부르는 말로 선동필 님의 말대로

"이순신이 '율곡선생이 전상(銓相)으로 있는 한 만나지 않겠다'고 한것은 달리 해석해 볼수 있습니다.  전상이란 조선왕조의 인사제청권을 가진 수반으로 이조판서에 해당합니다. 이순신이 관직에 있는데 그  인사권한을 행사 할수 있는 이조판서를 사사로이 만난다는 것은 당시의 동,서인 대립의 정쟁구도상 상당히 조심스럽지 않았겠냐는 추측을 할수 있습니다. 다르게는 인사권자를 만나지 않겠다는 이순신의 청렴결백함이 드러나는 대목으로 볼수도 있습니다."

그러하기 때문에도 청렴결백했던 이순신이 율곡 이이을 통하여 구봉 송익필을 만났다고 보기는 더욱 어려운 것입니다.


거북선에 대해서는 태종때의 기록 이후 선조때 이순신이 거북선을 만들기 까지는 실록에는 등장하지 않는 것이 맞습니다. 따라서 태종 때 만들어진 거북선이 이순신이 만든 것과 동일한 것이라고는 확정을 지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실록의 태종 15년 7월16일(신해)에 좌대언(左代言) 탁신(卓愼)이 병비(兵備)에 대한 사의(事宜)를 올린 내용 중에 “여섯째는, 거북선[龜船]의 법은 많은 적과 충돌하여도 적이 능히 해하지 못하니 가위 결승(決勝)의 좋은 계책이라고 하겠습니다. 다시 견고하고 교묘하게 만들게 하여 전승(戰勝)의 도구를 갖추게 하소서.” 하는 기록은 태종 때 만들어진 거북선이 당시 수군의 매우 유용한 군사장비였음을 입증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당시 조선 수군의 군사장비로서 계속 존재해 왔을 가능성도 있으며, 중간에 폐기되었다고 해도, 고려시대 개발된 화약이 조선시대에도 계속하여 쓰였듯이, 그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며 이것을 이순신이 좀더 효율적으로 개선하여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봉우 권태훈 옹이 거북선에 대해 언급한 것은 '잠수기능을 갖춘 거북선'을 구봉이 이순신에게 전해 주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주된 의도였지 잠수도 못하는 거북선을 말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여겨집니다. 거북선의 명칭에 대해서도 봉우 권태훈 옹은 구봉(龜峰)이 전해주었다고 해서 귀선(龜船) 즉 거북선이라고 했다고 하는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봉우 권태훈 옹의 언급대로라면 임란당시 이순신이 사용한 귀선(龜船) 즉 거북선은 당연히 잠수기능을 갖춘 거북선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거북선이 잠수기능까지 갖추었다면 전장에서의 그 효용과 활용에 대해 난중일기와 임진장초에 그에 대한 언급이 없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잠수기능에 대한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거북선이 잠수기능을 갖추었다면 돛을 달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는 "임진년(1592) 2월 8일에 거북선에 쓸 돛베 29필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으며, "4월 11일에는 베로 거북선 돛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실록에도 거북선에 쓸 돛베를 내려주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돛을 단 거북선이 잠수한다?

돛대를 내렸다 올렸다 하는 공간이 있기는 했다고 하지만 돛을 단 거북선이 잠수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봉우 권태훈 옹의 언급에서는 구봉 송익필이 이순신을 불러 찾아 갔을 때 이미 거북선의 실제 축소판을 나무로 만들어 놓았는데, 이순신이 그것을 보고 뭔가 부족하다 싶어 모형에 구멍을 4개를 뚫자 발전이 되서 이리저리 동서남북으로 돌아다녀 붙잡을 수도 없는데, 구봉이 한 구멍을 더 뚫어 잠수까지 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동력을 만들어 동서남북으로 움직이고 잠수기능까지 갖춘 거북선에 멋으로 돛을 달았겠습니까?

구봉이 이미 모형까지 만들어 놓고 작동했는데, 선동필님의 말대로 기술이 못 쫓아가서 만들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것도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자체 동력을 발생시키는 장치까지 갖추었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이순신의 후손들이 보존해 오고 있는 거북선의 그림과 조선 수군의 훈련을 묘사한 그림에 나와 있는 거북선에는 배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데 사용하는 노(櫓)가 여러개 나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도 멋일까요?


또한 임진왜란이 끝난 이후에도 이순신이 만들었던 거북선을 다시 만들었다는 기록이 실록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 그려진 거북선의 구조에 대한 기록이나 그림 어디에도 거북선이 잠수기능을 갖추었다는 혹은 갖춘 것으로 보이는 내용은 전혀 없습니다.

구봉이 이순신에게 가르쳐 주어서 만든 거북선은 임진왜란 때만 사용되고 종적을 감춘 것일까요?

혹자는 봉우 권태훈 옹의 도(道)가 높았다고 알려져 있고 또한 구봉 송익필도 도(道)가 조선에서 가장 높았다고 하니 구봉이 그럴 수도 있겠구나 봉우 권태훈 옹이 거짓말을 했을 리가 있나 하고 맹목적으로 믿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매우 위험한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구봉 송익필과 운곡 송한필이 비록 조선에서 도가 높고 성리학에 밝은 인물들이었다고는 하나 그들의 후반기의 인생에서는 천민으로 전락한 것에 대한 개인적인 복수심을 동인과 서인의 당파싸움에 결합시켜 동인은 물론 수 많은 무고한 사람들까지 살육된 기축옥사를 배후에서 조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자들입니다.

어찌 이런 자를 충무공 이순신의 스승으로 끌어다 붙여 임진왜란을 종결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충무공 이순신의 명예를 더럽히고, 임진왜란 기간 동안 이순신이 세운 빛나는 공적을 구봉 송익필에게로 돌리려 한단  말입니까.


결론지어 말하자면 봉우 권태훈 옹의 구봉 송익필과 이순신, 거북선에 대한 이야기는 당시 봉우 자신이 수행자들 사이에서의 확고부동한 명성과 위치를 이용하여 삼전생의 자신(운곡 송한필)의 형이었던 구봉 송익필을 높여주고, 구봉 송익필이 기축옥사의 배후 조정자란 오명(汚名)을 간과시키기 위해 봉우 권태훈 옹이 꾸며낸 것으로 밖에는 여겨지지 않습니다.

전삼생의 형제간의 우애를 이번생에서까지 지키고자 한 것은 높이 사줄만은 하나 거짓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오도시킨 것은 참으로 악랄한 행동이며 딱한 사람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본디 구봉 송익필과 운곡 송한필이 천민으로 전락한 것은 그들의 아버지인 송사련이 외삼촌인 안당의 집안을 모함하여 몰락시키고, 그 공로로 안당의 집안의 재산과 노비를 차지하고 벼슬까지 얻었던 것이 그 근본적인 원인임에도, 인과응보는 생각하지도 않은 채, 그 원한을 자신들의 아버지에게 돌리지 않고 동인들과 무고한 사람들에게로 복수의 칼날을 돌린 것은 그들의 본래의 천한 신분의 성정이 들어났던 것이라 여길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이들을 어찌 도학자라고 높여 줄 수가 있겠습니까.]


[참고]
이해를 돕기 위해 봉우 권태훈 옹이 구술했던 이순신에 대한 이야기의 앞부분을 여기에 옮깁니다.

"비행기 비행기 송구봉이 비행기 썼어요. 아는데 내놓지 않았어요. 송구봉이
송구봉이 거북선 맨든이여 그가.
송구봉이 해줬다고 해서 거북선 구선이여 그게.
그래 그런거여. 거북구자 봉우리 봉자지.
그랬는데, 그게 우리는 지금 다 아는 일인데, 지금 경상도에서 어떤 이씨라고 하는 사람이 우리 조상이 맹들었다고 그런 소리해. 그거 정신 없는 사람이여.

율곡이 충무공을 먼저 보았어요.
병조판서 적인데, 병조판서 적인데.
이렇게 지나가다 보니까 어린애 글 가르치는데 통간에 토를 이상하게 띄어.
다른 사람이 띄는 학자들이 띄는 소리와 반대로. 이제 토를 띄서 가르치는 걸 지나가다 들었어요.

OO을 타고 가다가 그 목소리도 웅장하고 누군가 그거 좀 찾아봐라 하니까, 이선달 님이 거기서 가르친다고 그러거든. 이선달이여 그때.

아 그러니까 댕겨오다가 내서 좀 오라고 해라.
율곡이 나 안갑니다. 내가 왜 그 대감댁에 갈 까닭이 있느냐.
그래 이양반이 찾아갔습니다. 율곡이 찾아갔어.
자네 생각은 있는데, 자격은 있어. 배경은 있는데, 배워야 하네.
그 얘기를 해보는데 잘 안들어 먹어요.
내가 가르치지 않고 그러믄 ......
내 친구 송구봉한테 한번 찾아가 보소.
........"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일본의 일장기 三元 2021.01.23 853
공지 천상에서 인간에게 내린 뇌화침법雷火鍼法 [1] 삼원회 2019.05.09 1809
공지 선도수행자仙道修行者의 호흡법呼吸法 삼원회 2016.02.11 5053
59 국회의사당의 담장을 허무는 것은 망국의 지름길 현도학회 2005.11.10 1970
58 태양이 빛을 잃고 때아닌 뇌성이 치는 것은... [3] 현도학회 2005.11.07 2690
57 정권의 볼모로 잡힌 국민의 먹거리 현도학회 2005.11.04 1582
56 일괄성 없는 정부의 개발정책 현도학회 2005.10.18 1750
55 태극기에 한반도의 분단이 예견? file 현도학회 2005.10.13 2813
54 見蚊拔劍(견문발검) 현도학회 2005.08.20 2396
53 북핵보다 위협적인 일본의 군비확장과 핵무장 현도학회 2005.08.03 1854
52 한반도 전쟁 시나리오의 가동 현도학회 2005.07.01 2646
51 日本과 未國은 韓國의 假想 敵國이다. 현도학회 2005.06.09 1915
50 鄧小平의 改革․開放 政策은 中國 最大의 失策이다. 현도학회 2004.08.27 1679
49 오성기(五星旗) file 현도학회 2005.04.30 4777
48 봉우 권태훈 옹의 소주천과 현빈일규 현도학회 2005.04.28 5474
47 삼원학회 게시판 글의 목적 현도학회 2005.03.23 4086
46 구봉과 이순신에 대한 다른 생각(벽오선생님 주장에 대해) 선동필 2005.03.22 3310
» [답변] 그렇게 보기는 어려울 듯 합니다. 현도학회 2005.03.22 3507
44 봉우 권태훈 옹의 지리관 현도학회 2005.03.21 3778
43 봉우 권태훈 옹의 대주천 현도학회 2005.03.14 3905
42 이순신이 구봉 송익필의 제자인가? 현도학회 2005.03.14 5472
41 입산수행시에 겨울을 택하는 이유 현도학회 2005.03.08 2705
40 환웅(桓熊)의 웅(熊)자를 되찾아야 한다. 현도학회 2005.02.26 3137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