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落胎)의 죄(罪)와 업(業)
1970년대 가족계획이라는 명목아래 실시되어온 낙태가 지금은 청춘남녀의 불륜(不倫)의 흔적을 지우기 위한 시술로 유행하고 있다. 아무런 죄의식이나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고 아기를 낳아서 키울 자신이 없다 싶으면 어렵지 않게 낙태를 결정하고 지워버리고 있는 것이 작금(昨今)의 현실이다. 그러나 태아(胎兒)는 엄연한 하나의 생명체이자 인간(人間)으로서 이를 죽이는 것은 분명한 살인행위이다.
태아가 잉태(孕胎)되는 것은 인간의 의지에 의해서 잉태가 되지만, 잉태되는 그 순간부터 태아는 하늘이 내린 생명체로서 산모(産母)의 뱃속에 의지하여 살고는 있지만 산모의 소유물은 아니다. 태아의 명(命) 또한 하늘이 정해 놓은 것인데, 이를 인간의 마음대로 잘라버린다는 것은 하늘을 거역(拒逆)하는 것으로 대죄(大罪)를 짓는 것일 뿐만 아니라, 태아에게는 사무치는 원한(怨恨)을 심어주는 것이다.
세상에 나가보지도 못하고 칼과 가위로 난도질당하니 그 고통은 어떠할 것이며, 그 원한이 얼마나 깊을지는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손으로 명(命)이 잘린 태아의 영혼은 이 세상을 떠도는 무주고혼(無主孤魂)이 되어 그 부모나 살아있는 형제의 주변을 배회하며 사무친 원한(怨恨)을 나타내게 된다. 또한 요구에 의해 낙태를 시술한 의사라고 할지라도 칼과 가위로 살인행위를 저지른 당사자이자 인간백정으로서 시술의 댓가로 재물은 축적할 수 있을 지라도 그 업보는 면할 수 없으며 그 가족과 자식 또한 삶이 평탄할 수 없다.
낙태를 많이 한 이들에게는 주변에 그 원혼이 배회하며 서로 싸우는 경우도 있다. 이는 여러 남자와 교제하며 낙태를 당한 영혼들이 씨가 달라 서로 싸우는 것으로 본인은 순탄한 삶을 살아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씨의 주인도 업보는 면할 수가 없다.
또한 낙태를 당한 형제가 있는 이들에게는 주변에 항상 그 원혼이 맴돌며 정신과 몸을 불편하게 하고, 하고자 하는 일을 불편하고 어렵도록 만들어 꺾어지게 하는데, 이는 비록 낙태는 부모가 했지만 그에 대한 업보(業報)는 자식도 부모 못지않게 받는다는 것이다. 이 업보가 그 자식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식의 자식에게도 대물림을 하며 삶을 고통스럽게 만들게 된다.
낙태를 한 이들이 대부분 순탄한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그 가족과 자식 또한 사람다운 삶을 살아가지 못하며 삶의 고비고비 마다 고배(苦杯)를 마시는 것이 모두 이에 연유하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을 자르는 선택은 쉽고 순간이지만, 그 업보(業報)는 두고두고 삶을 고난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자신의 업보는 생각지도 못한 채,
“내 삶은 왜 이런가?"
"나에게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가?"
"왜 하필이면 나인가?"
하고 반문하는 이들이 있지만, 이는 모두 자신이 지은 업(業)의 고리일 따름이다.
따라서 낙태는 윤리적인 면으로도 분명 금지되어야할 인간의 야만스럽고 저주스런 행위이지만, 그에 상응(相應)하는 업보(業報)는 분명히 따른다는 것을 명심(銘心)하고 경계해야 할 것이다.
1970년대 가족계획이라는 명목아래 실시되어온 낙태가 지금은 청춘남녀의 불륜(不倫)의 흔적을 지우기 위한 시술로 유행하고 있다. 아무런 죄의식이나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고 아기를 낳아서 키울 자신이 없다 싶으면 어렵지 않게 낙태를 결정하고 지워버리고 있는 것이 작금(昨今)의 현실이다. 그러나 태아(胎兒)는 엄연한 하나의 생명체이자 인간(人間)으로서 이를 죽이는 것은 분명한 살인행위이다.
태아가 잉태(孕胎)되는 것은 인간의 의지에 의해서 잉태가 되지만, 잉태되는 그 순간부터 태아는 하늘이 내린 생명체로서 산모(産母)의 뱃속에 의지하여 살고는 있지만 산모의 소유물은 아니다. 태아의 명(命) 또한 하늘이 정해 놓은 것인데, 이를 인간의 마음대로 잘라버린다는 것은 하늘을 거역(拒逆)하는 것으로 대죄(大罪)를 짓는 것일 뿐만 아니라, 태아에게는 사무치는 원한(怨恨)을 심어주는 것이다.
세상에 나가보지도 못하고 칼과 가위로 난도질당하니 그 고통은 어떠할 것이며, 그 원한이 얼마나 깊을지는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손으로 명(命)이 잘린 태아의 영혼은 이 세상을 떠도는 무주고혼(無主孤魂)이 되어 그 부모나 살아있는 형제의 주변을 배회하며 사무친 원한(怨恨)을 나타내게 된다. 또한 요구에 의해 낙태를 시술한 의사라고 할지라도 칼과 가위로 살인행위를 저지른 당사자이자 인간백정으로서 시술의 댓가로 재물은 축적할 수 있을 지라도 그 업보는 면할 수 없으며 그 가족과 자식 또한 삶이 평탄할 수 없다.
낙태를 많이 한 이들에게는 주변에 그 원혼이 배회하며 서로 싸우는 경우도 있다. 이는 여러 남자와 교제하며 낙태를 당한 영혼들이 씨가 달라 서로 싸우는 것으로 본인은 순탄한 삶을 살아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씨의 주인도 업보는 면할 수가 없다.
또한 낙태를 당한 형제가 있는 이들에게는 주변에 항상 그 원혼이 맴돌며 정신과 몸을 불편하게 하고, 하고자 하는 일을 불편하고 어렵도록 만들어 꺾어지게 하는데, 이는 비록 낙태는 부모가 했지만 그에 대한 업보(業報)는 자식도 부모 못지않게 받는다는 것이다. 이 업보가 그 자식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식의 자식에게도 대물림을 하며 삶을 고통스럽게 만들게 된다.
낙태를 한 이들이 대부분 순탄한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그 가족과 자식 또한 사람다운 삶을 살아가지 못하며 삶의 고비고비 마다 고배(苦杯)를 마시는 것이 모두 이에 연유하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을 자르는 선택은 쉽고 순간이지만, 그 업보(業報)는 두고두고 삶을 고난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자신의 업보는 생각지도 못한 채,
“내 삶은 왜 이런가?"
"나에게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가?"
"왜 하필이면 나인가?"
하고 반문하는 이들이 있지만, 이는 모두 자신이 지은 업(業)의 고리일 따름이다.
따라서 낙태는 윤리적인 면으로도 분명 금지되어야할 인간의 야만스럽고 저주스런 행위이지만, 그에 상응(相應)하는 업보(業報)는 분명히 따른다는 것을 명심(銘心)하고 경계해야 할 것이다.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공지 | 일본의 일장기 | 三元 | 2021.01.23 | 853 |
공지 | 천상에서 인간에게 내린 뇌화침법雷火鍼法 [1] | 삼원회 | 2019.05.09 | 1809 |
공지 | 선도수행자仙道修行者의 호흡법呼吸法 | 삼원회 | 2016.02.11 | 5053 |
39 | 기축옥사(2) | 현도학회 | 2005.02.26 | 3371 |
38 | 기축옥사의 불씨 기묘사화(1) | 현도학회 | 2005.02.25 | 2866 |
37 | 고려의 충신 최영 장군의 실추된 명예 | 현도학회 | 2005.02.23 | 3477 |
36 | 원상수행은 조식수행의 정도가 아니다. | 현도학회 | 2005.02.21 | 2785 |
35 | 중국한족의 문화에서 삼태극이 드문 이유 | 현도학회 | 2005.02.21 | 2945 |
34 | 주문수행(呪文修行)에 임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 현도학회 | 2005.02.13 | 2789 |
33 | 인종의 승하와 조선기인의 고뇌 | 현도학회 | 2005.01.19 | 2871 |
32 | 용호비결에 대한 부연설명 | 현도학회 | 2004.12.28 | 2929 |
31 | [답변]<b>삼원학회는 연정원과 무관하다.</b> | 현도학회 | 2003.07.21 | 6306 |
30 | 절제(節制)의 미덕 | 현도학회 | 2004.12.16 | 2455 |
» | 낙태의 죄와 업 | 현도학회 | 2004.11.08 | 3222 |
28 | 앞으로 일어날 일이라는 것은....... | 현도학회 | 2004.11.05 | 2457 |
27 | 우리민족의 나아갈 길 | 현도학회 | 2004.11.02 | 2556 |
26 | 한로절에 뇌성이 치고 일식이 일어나는 것은 | 현도학회 | 2004.10.21 | 2560 |
25 | 삼원학회 홈페이지의 접속불량 [1] | 현도학회 | 2004.09.21 | 2608 |
24 | 친일 과거사 청산 이전에 되찾아야 할 우리의 영토 | 현도학회 | 2004.09.14 | 2197 |
23 | 남북통합이후 민족의 대통일 | 현도학회 | 2004.08.27 | 2356 |
22 | 고구려사 왜곡 - 중국정부에 감사한다. | 현도학회 | 2004.08.10 | 2318 |
21 | 백산민족의 성지 | 현도학회 | 2004.01.25 | 3172 |
20 | 인연 | 현도학회 | 2002.12.02 | 37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