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 선생은 신라 문성왕[신라의 제46대 왕(재위 839∼857)] 19년에 857년 경주 사량부에서 출생하였다는 설과 군산 옥구에서 태어났다는 설이 있다. (필자의 생각은 경주로 여겨진다.) 현성배우 賢聖配偶 현인과 성현의 짝이되는 사람이다. 부친은 38대 원성왕(元聖王, 재위 785~798) 때에 숭복사崇福寺 창건에 참여했다고 전해지는 견일肩)이다.
선생은 868년 12세의 어린 나이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다. 18세에 장원급제를 하고 24세에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지어 황소의 난을 평정했다.
선생은 당나라에 있으면서 선가의 큰 스승인 신선 종리권鍾離權을 만나 신선 여동빈 등과 교류하였으며 선법을 익혔 29세에 신라로 돌아왔다. 신라에서 한림학사를 거쳐 지방관으로 함양, 서산 및 태인 등지의 태수로 관직을 지내고 894년 진성여왕에게 시무책[시무십여조時務十餘條]을 올려 개혁정치를 펼 것을 권하였으나, 귀족계급인 진골과 성골들의 반대로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없게 되자 은신隱身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부득이 몸을 숨겨야 하는 일이 발생하여 피신을 하게 된 것이었다. 부패한 신라귀족에게 목숨을 바쳐야할 이유와 필요가 없었기에 인생에서 가장 고귀한 신선의 법인 선도수행을 하기위해 세상 속으로 숨어들어야 하는 운명을 따른 것이다.
이렇듯 선생은 40세 전후로 벼슬을 버리고 세상을 등져 선도 수행생활로 인생을 마무리한 것으로 보여 진다. 그 마지막에 해인사에서 혈육에게 세상을 떠난다고 말하고 자취를 감추었다. 지금도 선생이 지리산地異山, 백운산白雲山, 가야산伽倻山 등지에서 수도를 하였다는 여러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가야산 해인사승려였던 형제에게 세상을 떠난다고 알린 후 자취를 감추고 잠적을 한 것이다. 귀족들의 탄압(죽임)을 피해서 흔적을 감춘 것이다.
최치원 선생은 해인사를 떠나서 홍산 월계月桂와 대현大賢 및 용연龍淵 등 일대에서 숨어 지낸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곳에서 여러 해 동안 머무르며 선도수행으로 세월을 보내다 용연의 암벽에 여러 흔적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으며 능안에 모셔저 있다.
현존하고 있는 최치원 선생의 무덤은 세상에 숨어 지내기에 가장 알맞은 은적곡隱迹谷이다. 사람들은 무덤의 주인공을 두고 노자와 같은 분이라고 했다. 선생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숨어 지낸 것이다. 그러나 일천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밝은 세상을 보려 하고 있다.
후손들은 조상의 사려 깊은 뜻을 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 세상으로 나오려 하는 것이다. 다시 조성되는 묘지는 용맥의 용머리 앞 용연의 뒤쪽에 모셔져야 할 것이다.
상기한 것처럼 선생은 당시 그 형제가 신라 왕실에서 파견된 군사들에게 선생이 신선이 되어 승천을 하였다고 말하였고, 지금까지 선생은 신선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선생은 당시에 신선으로 세상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충청남도 홍성 은적곡에서 지금까지 숨어서 지내오고 있는 것이다. 이제서야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되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ㅇ. 동국여지승람에 고려학자 이규보가 말하기를 최치원 선생의 무덤은 호서지방 홍산현 극락사 뒤에 있다고 했다. (무덤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극락사의 흔적이 있다.)
ㅇ. 최치원 선생이 고려 태조 왕건에게 계림은 낙엽과 같으며 고려는 푸른 소나무와 같다는 글을 전했다는 말도 있다. 이 말은 신라가 곧망한다는 뜻이다.
ㅇ.경주최씨 종친회에서는 최치원 선생의 무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선생의 본래의 뜻은 성공 한것이다. 후손들은 조상의 존엄에 대하여는 다시한번 생각을 해야할 것이다.
선생은 868년 12세의 어린 나이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다. 18세에 장원급제를 하고 24세에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지어 황소의 난을 평정했다.
선생은 당나라에 있으면서 선가의 큰 스승인 신선 종리권鍾離權을 만나 신선 여동빈 등과 교류하였으며 선법을 익혔 29세에 신라로 돌아왔다. 신라에서 한림학사를 거쳐 지방관으로 함양, 서산 및 태인 등지의 태수로 관직을 지내고 894년 진성여왕에게 시무책[시무십여조時務十餘條]을 올려 개혁정치를 펼 것을 권하였으나, 귀족계급인 진골과 성골들의 반대로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없게 되자 은신隱身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부득이 몸을 숨겨야 하는 일이 발생하여 피신을 하게 된 것이었다. 부패한 신라귀족에게 목숨을 바쳐야할 이유와 필요가 없었기에 인생에서 가장 고귀한 신선의 법인 선도수행을 하기위해 세상 속으로 숨어들어야 하는 운명을 따른 것이다.
이렇듯 선생은 40세 전후로 벼슬을 버리고 세상을 등져 선도 수행생활로 인생을 마무리한 것으로 보여 진다. 그 마지막에 해인사에서 혈육에게 세상을 떠난다고 말하고 자취를 감추었다. 지금도 선생이 지리산地異山, 백운산白雲山, 가야산伽倻山 등지에서 수도를 하였다는 여러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가야산 해인사승려였던 형제에게 세상을 떠난다고 알린 후 자취를 감추고 잠적을 한 것이다. 귀족들의 탄압(죽임)을 피해서 흔적을 감춘 것이다.
최치원 선생은 해인사를 떠나서 홍산 월계月桂와 대현大賢 및 용연龍淵 등 일대에서 숨어 지낸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곳에서 여러 해 동안 머무르며 선도수행으로 세월을 보내다 용연의 암벽에 여러 흔적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으며 능안에 모셔저 있다.
현존하고 있는 최치원 선생의 무덤은 세상에 숨어 지내기에 가장 알맞은 은적곡隱迹谷이다. 사람들은 무덤의 주인공을 두고 노자와 같은 분이라고 했다. 선생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숨어 지낸 것이다. 그러나 일천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밝은 세상을 보려 하고 있다.
후손들은 조상의 사려 깊은 뜻을 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 세상으로 나오려 하는 것이다. 다시 조성되는 묘지는 용맥의 용머리 앞 용연의 뒤쪽에 모셔져야 할 것이다.
상기한 것처럼 선생은 당시 그 형제가 신라 왕실에서 파견된 군사들에게 선생이 신선이 되어 승천을 하였다고 말하였고, 지금까지 선생은 신선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선생은 당시에 신선으로 세상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충청남도 홍성 은적곡에서 지금까지 숨어서 지내오고 있는 것이다. 이제서야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되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ㅇ. 동국여지승람에 고려학자 이규보가 말하기를 최치원 선생의 무덤은 호서지방 홍산현 극락사 뒤에 있다고 했다. (무덤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극락사의 흔적이 있다.)
ㅇ. 최치원 선생이 고려 태조 왕건에게 계림은 낙엽과 같으며 고려는 푸른 소나무와 같다는 글을 전했다는 말도 있다. 이 말은 신라가 곧망한다는 뜻이다.
ㅇ.경주최씨 종친회에서는 최치원 선생의 무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선생의 본래의 뜻은 성공 한것이다. 후손들은 조상의 존엄에 대하여는 다시한번 생각을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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